자연이 주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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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주는 삶
  • 유홍석
  • 승인 2024.02.0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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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의 글마당]
유홍석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반
시민의 신문 <인천in>이 이달부터 인천노인종합문화화관과 함께 회원들의 글쓰기 작품(시, 수필, 칼럼)을 연재하는 <소통과 나눔의 글마당>을 신설합니다. 풍부한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고, 글쓰기 훈련을 통해 갈고 닦은 시니어들의 작품들을 통해 세대간 소통하며 삶의 지혜를 나눕니다. 

 

 

나는 지시받는 일에서 떠나 자유의 몸이 되었다. 도시를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편히 쉴 곳을 찾았다. 간섭없이 정원을 가꾸며 여생을 재미로 살고 싶었다. 숲이 있는 동산, 마을 앞 냇가에는 물고기가 살랑거리고 양지바른 남향 기슭에 텃밭이 있는 오순도순한 마을에 살고 싶었다. 자연과 더불어 흙냄새를 맡으며 부부가 함께 산에도 오르고 싶었다.

부부는 일심동체라 살다 보면 성격이 닮아간다고들 하지만, 육순을 넘으며 습성에 젖은 아내의 마음을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편한 도시 생활을 떠나 친구도 없는 농촌에서 밭일을 하며 세월을 보낼 것을 생각하면서 아내는 요지부동 도시를 떠나려 하지 않았다.

나이 칠십에 들어 직장을 물러난 나이지만 아직 내게 남아있는 에너지는 일을 놓고 갈 날만을 기다리는 노인으로 살고 싶게 하지 않았다. 욕심을 줄이고 차분히 자연과 더불어 산다면 몸도 건강하고 가족과 화목을 도모하면서 이웃, 친지, 친구들에게도 자연이 준 천혜의 선물들을 안겨줄 수 있을 것이다.

시내에서 떨어진 김포 구래리에 2천 평 밭을 갖고 전원생활을 하는 친구가 있어 주말 농사에 대한 자문을 구하니 반갑게 맞아준다. 비옥한 땅, 수리 시설이 좋아 가뭄, 장마 피해가 적어 농사짓기에 편한 땅을 내어주기도 한다. 같이 텃밭을 가꾸며 즐겁게 지내자고 더 반가워한다. 우리 부부가 부지런만 하면 수확하는 재미도 있을 것이라고 한다. 다양한 찬거리로 식탁이 풍성해져 가족들 건강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듯 했다. 친구는 농기구는 같이 쓰면 되고 퇴비, 비료, 농약, 씨앗 등 필수품은 농협에서 구입하면 부담을 없을 것이라고 이른다. 몸으로 하는 일이라 힘 좀 쓰면 오순도순 재미있게 농사지을 수 있다고 하였다.

자연을 즐기며 재미 삼아 가꾸는 채소 농사 역시 친구가 도와준다니 나는 좋아서 집사람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아내와 함께 같이 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집과 35km 떨어진 곳이라 자가용으로 이른 새벽에 다녀야 하는 점이 불편했다. 자주 들르면 돌밭도 옥토가 되지만, 멀리 있으면 옥답도 금방 쑥대밭이 된다는 말이 부담을 주었다. 매일은 못 가더라도 씨앗을 뿌리든가 모종 심을 때, 수확할 때는 한 주에 2~3번 가고 그 외는 1주나 10일에 한번 쯤 가게 되었다. 농사는 지겨울 때도 있고 힘들어 지치기도 했지만 스스로 즐거운 마음을 내면 힘이 솟고 작물도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대견해 하기도 했다.

언 땅이 풀릴 무렵인 3월 중순에는 옥수수, 가지, 고춧대를 비롯하여 고구마, 콩 넝쿨을 태웠다. 도랑 북데기와 밭둑 마른 풀을 태워 해충을 죽이면서 밭을 청소했다. 퇴비 30포를 어깨로 져 날라 모 심을 두둑에 뿌리고 삽으로 뒤엎었다. 3월 하순에는 완두콩 강낭콩을 일찌감치 심었고 5월 초에는 고구마 모를 구입하여 멀칭한 비닐 구멍을 뚫고 물을 준 후 600주를 심었다. 고추밭에는 다른 채소들보다 퇴비를 많이 주어 흙을 뒤엎고 둑을 높여 배수로를 정비했다. 고추 비료와 탄저병 약, 진딧물 약을 뿌리고 흙을 골랐다. 고추 모종도 구멍을 뚫고 물을 준 후 300주 가량 심었다. 모든 이랑과 도랑에는 잡풀이 나오지 않도록 깔끔히 멀칭을 했다. 고추가 자라나 가지가 둘로 갈라지기 시작하면 밑에 난 곁순들을 따 주었다. 영양분을 아끼고 빗물이 튀어 병균이 전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자란다는 말이 맞았다.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내가 작물들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서 노력의 성패가 갈렸다. 풍년이 들면 고추가 한 나무에 70~80개, 많은 것은 100개나 주렁주렁 열렸다. 그런 고추처럼 줄줄이 달려나오는 고구마 역시 자랑스러워 그 때는 온 밭에 행복의 물결이 넘실거렸다. 다리가 저린지 고개가 아픈지도 몰랐다. 정신이 없다가 모든 작물의 운반이 끝났을 때 비로소 여기저기 내 몸은 쑤기고 삐걱대기 시작했다.

몸은 고되지만 일에 열중하다 보면 삶의 의욕이 생기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부지런히 움직여 하늘이 주는 비타민과 미네랄이 듬뿍 들어있는 식품, 바른 먹거리를 생산하는 일에 보람을 느꼈다. 투자한 시간과 비용, 교통비를 따지면 마트에 가서 유기농 채소를 사는 게 힘이 더 안 들고 값이 쌌다. 그러나 녹색의 밭에 나가면 마음이 안정되고 온몸으로 햇볕을 받으면서 일을 하니 세로톤 호로몬이라는 게 나와서 그런지 행복했고 삶이 더 너그러워 보였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시장 안 가도 식탁에 싱싱한 채소를 올릴 수 있는 것도 두 배의 즐거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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