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연휴 후 적막강산,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추억의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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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휴 후 적막강산,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추억의 피아노
  • 채진희
  • 승인 2024.02.15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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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채진희 / 자유기고가

 

아이들이 어렸을 때, '손가락을 많이 쓰면 똑똑해진다'는 말이 있었다. 필자는 두 아이를 똑똑하게 잘 키우고 싶었던 마음이 앞서서 부랴부랴 피아노를 샀다. 30년이 넘은 그 고물 피아노가 지금은 작은방 한구석에서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 온 식구가 이제는 팔아 버리라고 한다 .

그 시절에는 두 아이 키우기가 어렵던 시절이었다 . 나라 정책 또한 아들딸 구별하지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라는 캠페인도 있었고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 라는 대국민 홍보전을 펼치며 동네마다 포스터가 붙어 있었던 시절이었다 . 딸과 아들은 1988 1989년 연년생으로 태어났다. 학원을 보내면 한 아이만 보낼 수 없었다 . 빠듯한 살림을 쪼개어 살림했다 . 매일 문제지를 배달 받아 집에서 두 아이를 가르쳤다 . 서울 모래내시장 근처 명지대학교 동네에서 '현대학원'을 운영했을 때보다 더 큰 열정으로 두 아이를 가르쳤다. 냉장고, 식탁, 부엌, 창문, 커튼, 꽃병, 주전자, 책상, 의자 등 수많은 글씨를 써서 붙였다. 화장실 문에까지 붙여서 한글 공부시켰던 기억이 새롭다 .

딸이 한 살이 될 때 녹용 한 첩, 그 다음 해에 아들은 두 첩을 먹였던 기억이 있다. 친정어머니 한약을 지어 드리면서 두 아이도 녹용을 먹이게 되었다. 그때 먹인 녹용 때문인지 건강하게 커 주어서 고맙고 감사하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두 아이가 아토피로 고생하고 있어서 미안한 마음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나 그 원인을 알지 못해 두 아이에게 미안해서 이런저런 고민을 했었다 . 약알칼리수도 먹여보았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 아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 양호 선생님은 공기 좋은 시골에서 치유하면 좋을 것 같다는 처방을 주셨다 .

일찍 결혼한 한 친구가 억척스럽게 아이를 기르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친구는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녹용 한 방울을 먹이면 평생 건강하게 자란다는 속설을 믿었고 행동에 옮겼다 . 나도 그 친구의 용기가 부러웠다. 몇 번을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리려고 생각은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

인천으로 이사 와서 서울에서 학원 했을 때의 실력을 살려 한동안 과외를 해서 살림에 보탰던 기억이 새롭다. 목돈으로 피아노를 살 수 없었다. 수개월 월부로 제일 예쁘고 비싼 피아노를 사서 두 아이를 피아노학원에 보내는 기쁨은 배가 되었다. 딸은 플룻을 방과 후 교실에서 배웠다 . 교내 합창대회 때 풀룻을 연주해서 나에게 기쁨을 안겨주기도 했다 . 피아노를 가르쳐주었기에 다른 악기도 다룰 수 있고 머리도 좋아질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

이번 설에 온 식구들이 모여서 먹고 자고 난 자리가 텅 비어 고요함이 적막강산이 되었다. 조잘거리던 손자녀가 금세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식구들이 돌아간 지 그제인데 몇 달이 지난 기분이 드는 건 내 나이 탓인가 싶다. 아줌마가 된 딸과 아들이 '젓가락 행진곡'을 치는 모습, 손자녀가 두 손가락으로 뭔가 모를 곡을 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제 역할을 톡톡히 한 고물 피아노는 아직도 아름다운 선율을 선물한다 .

고물이 된 피아노는 애정 어린 나의 정신적인 보물이다. 애물단지 취급하는 식구들이 야속하다. 내 마음도 모르는 아들은 무정하게도 요즘 피아노 칠 사람도 없다.’ 라며 투정을 부린다. 거기에 덧붙여서 예 쓰레기’ 라고 심하게 말하기도 한다 . 나는 은근히 속상하고 마음에 서운함까지 밀려온다 . 그때는 우리 집 재산목록 1호였던 피아노가 오랜 세월이 지나서 흠집도 생기고 광택도 잃어버려서 별로 품위가 없어 보이기는 한다 .

아들 말대로 정말 예 쓰레기가 된 것 같다 . 하지만 나는 그 피아노에 정감이 간다. 손주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사위도 싫다고 한다. 사람도 나이를 먹으면 뒷방 늙은이가 되는데 피아노 처지가 꼭 내 처지인 양 작은방을 차지하고 있다. 조율되지 않은 피아노지만 묵직한 피아노가 아직도 나를 위로해 주고 있다. 우리 가족의 희로애락을 같이해 온 고물 피아노가 되어버렸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고 나를 보듬어 주는 우리집 추억의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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